좋아하게 된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그렇게 멀지 않은 대만에서, 그것도 토요일에 한다는 얘길 들었다. 서울에서의 공연이 아주 좋아서 한번쯤 더 보고 싶었는데, 갈 만한 곳에서 한다니! 나머지 시간엔 여행도 하고 맛난 것도 사먹고 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섣불리 항공권을 끊고 숙소예약을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콘서트 티켓 예매는 여기저기 검색해가며 겨우겨우 했다. 대만 티켓예매 사이트... 예매하려고 하는데 그 그룹의 팬이라야 알 것 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 예매가 가능하더군. 1위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시간이 좀 걸렸고, 그래서 좋은 자리는 얻지 못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칼퇴근을 하고, 출근하면서 미리 지하철역 보관함에 넣어둔 캐리어를 찾아 공항버스를 탔다. 주말을 앞두고 있어 그런지 사람이 꽤 있는 편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예약한 걸 쭉 확인해봤다. 숙소에 레이트 체크인 한다고 미리 연락해뒀는지, 콘서트 장소는 어디인지, 유명한 과자를 숙소로 배달시켰는데 날짜는 제대로 썼는지 등등. 이것저것 보다보니 비행 출발시간이 되었고, 두어 시간 지난 후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꽤나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공항 버스를 타고 타이페이 메인스테이션으로 향했다. 1시간쯤 지나 메인스테이션에 도착. 역 맞은 편에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자정이 지났는데도 체크인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너무 졸려서 체크인하고 들어가 잽싸게 씻고 잠들었다. 여행 첫 날은 이렇게 얼렁뚱땅 끝나버렸다. 이런 게 주말 밤도깨비 여행인걸까.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누가크래커를 사러 동먼역으로 향했다. 9시가 되기 전인데도 열기가 느껴지는 거리. 대만 5월 날씨는 우리나라 한여름 날씨라더니 정말 너무 더웠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매우 유명한 미미크래커. 문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구입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한국인인 듯했다. 내 뒤에 줄을 선 두 남자는 기다리는 내내 '이걸 왜 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거보다 아#비에 딸기쨈 발라 먹는 게 더 맛있다, 이거 우리나라 사람만 사는 거 아니냐...' 등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으나 자기들 차례가 오니 10박스씩 샀다. 친구들과 가족의 부탁을 받아서 사는 거였나보다. 처음엔 사려고 줄 서 있으면서 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씹는걸까, 자기들도 사면서 왜 저러나 생각했었는데, 부탁받았는데 줄까지 서야 하고 무겁기도 하면 짜증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맛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먹을 것만 사려는 나도 줄 서는 건 좀 짜증나긴 했으니까.
미미크래커를 산 다음 아침을 먹기 위해 근처 딘타이펑으로 갔다. 샤오룽바오 1인분과 볶음밥, 오이김치(?)와 칼피스를 주문. 신나게 다 먹었다. 잠도 얼마 못 자고 나와서 식욕이 없다, 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시킨 음식 싹싹 다 비우고 써니힐에 펑리수를 사러 갔다.
써니힐에 가면 무료로 차 한 잔과 펑리수 한 개를 준다. 시식의 개념일텐데 뭔가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 전에 밥을 먹고 간 것이 무색할 정도로 열심히 잘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줄 펑리수를 잔뜩 샀다.
아무 생각 없이 샀더니 양이 너무 많았고... 큰 박스를 들고 돌아다닐 수 없어서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저 애물단지를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송산문창원구로 향했다.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플리마켓에서 액세서리나 문구류 등 자잘하고 예쁜 걸 팔기도 하고 '성품서점'이 있어 책과 문구류 구경도 할 수 있어 아주 좋아하는 곳이다. 날씨가 지나치게 덥다는 걸 잊고 신나서 갔는데... 버스에서 내려 가는 길부터 이미 너무 더웠다. 가는 길에 있는 문구+아트상품 샵에서 잡다한 걸 구경하고 더위도 식히고... 그러면서 겨우겨우 도착.
더워서 다른 곳에 들를 마음은 전혀 안 생겨서 성품서점으로 향하던 중 발견한 서점. 외관도 너무 예쁘고 인테리어도 정말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음료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서점 안에서 팔고 있어서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온다면 앉아서 분위기를 즐기고 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집에 서재를 만들 수 있다면 이렇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건물 안에 서점, 호텔, 옷가게, 아트샵, 푸드코트 등 다양한 샵이 있어서 여기에서 하루 종일 있으라고 해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콘서트장에 가야하는 사람! 너무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양산으로 쓸 작은 우산을 하나 산 다음 아쉬움을 달래며 나왔다.
양산(이 아니고 사실은 우산)을 쓰고 잽싸게 나온 나.
콘서트장 가기 전에 밥 대신 망고빙수를 먹으러 갔다. 아이스몬스터에 가서 한 10분쯤 줄을 서 있다가 들어갔는데, 줄 선 시간보다 더 오래 기다려서야 빙수를 받을 수 있었다. 작은 그릇에 뭔가 더 주는 걸 보고 푸딩인가 싶었는데 빙수 먹다가 조금씩 부어먹으라고 준 것 같았다. 하긴 망고빙수 치고 망고가 너무 없다 싶긴 했어.
빙수를 먹고 콘서트장으로 가서 티켓을 받고 공연 시작 전까지 팬들이 나눠주는 포토카드, 컵홀더 등을 받고 스탠딩 입장 줄을 섰다. 현지 팬들도 많았고, 한국에서 간 팬들도 꽤나 많았다. 역시나 공연은 너무 잘 해서 보면서 괜히 막 내가 뿌듯했다. 콘서트가 끝난 다음엔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어 편하게 숙소에 갈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먹을 만한 것을 사기 위해 메인스테이션 지하로 갔는데 음식을 사는 대신 성품서점에 들어가서 토이스토리 컵받침을 사가지고 나왔다. 랏소 컵받침이라니 안 살 수가 없지 않은가!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고, 숙소로 미리 배달주문을 했던 미미크래커를 받았다(물건 받을 곳 주소를 미리 지정하고 계산을 완료하면 예약한 날 시간맞춰 숙소 로비로 갖다준다. 카톡으로 연락을 해 줘서 편하게 받을 수 있었다. 배달비가 포함되니 당연히 가서 사는 것보다는 비싼데, 시간이 없는 여행자라면 줄서는 노력+배송비가 그 안에 들어있다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가족에게 주고 친한 분들에게도 주고 싶어서 좀 많이 샀는데(배달시킨 10박스+직접 가서 산 5박스까지)...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저걸 다 어떻게 들고 가나...
메인스테이션에서 인타운 체크인을 하며 가지고 있던 큰 짐을 다 부쳐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시먼에 갔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뭔가 좀 사야지 싶어서.
시먼홍루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구경하다 핀뱃지를 하나 샀고, 근처 삼형매 빙수 가게에 가서 빙수를 점심식사 대신으로 먹었다.
(보통 남들은 2~3명이 이거 하나 먹던데... 나는... ^^;; 뭐 밥 대신이니까 과한 건 아니라 생각한다.)
(시먼의 어딘가에 들어가서 산 그루트 usb. 너무 귀엽다!!!)
급하게 오게 된 타이페이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오르골 구경도 하고 플리마켓 구경도 했다. 너무 더워서 빨리 실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날이 좀 괜찮을 때 다시 와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와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도 좋았고 건물도 아름다워서 더 그랬나보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공항에 가기 직전, 아무래도 여기 왔으면 대만판 음반도 하나 사가야 하지 않나 싶어서 구글맵 검색을 시작. 요즘 세상에 cd를 파는 곳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검색어를 넣어보고 음반매장을 찾았는데 시먼... 다시 시먼으로 가서 몇 군데 뒤진 끝에 겨우 대만판 음반을 구입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공항철도 역에 가서 공항행 지하철을 탔다. 짧고 너무나 빡센 스케줄의 주말 여행이 끝난다는 생각에 힘이 풀려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자다가 공항에 도착.
공항에서 미리 주문 배송해둔 치아더 펑리수를 찾았고, 박스가 너무 커서 기내에 들고가긴 힘들 것 같아 추가로 수하물을 더 부친 다음 출국장으로 향했다.
몇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 도착. 짐 부친 걸 찾고 보니 정말이지 이걸 다 집에 들고갈 수 있을까 싶어 암담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다 들고 집에 갔다.
이 많은 짐들은 내 소중한 친구들, 고마운 직장동료분들, 잘 먹는 내 가족들에게 골고루 뿌려졌고, 내겐 큰 맘 먹고 간 콘서트의 감동이 남았다. 내가 팬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공연을 잘 하는 아티스트구나 싶어서 매우 뿌듯하기도 했고(물론 내 동생은 그것도 팬깍지라고 하겠지만).
여행 다녀온 후 수요일 정도까지는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 나이에 주말 해외여행은 정말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에만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나는 인간이 아닌 좀비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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